꿈을 이룬 코메리칸...IT기업 STG 이수동 회장
美정부 컴퓨터시스템 책임진 ‘사이버 보안관’
미국 내 한인 숫자가 지난해 말 현재 107만7000여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243만명), 필리핀(185만명), 인도(168만명), 베트남(112만명)에 이어 다섯 번째다. 유학생과 상사원 등을 포함할 경우 실제로는 2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수 한인들은 이미 미국 주류사회에 본격 진출해서, ‘코리안·아메리칸’의 이름으로 아메리간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뛰고 있다.
미 국무부의 인사·봉급 관리는 물론 전 해외 공관을 잇는 통신망과 온라인 비자 시스템을 설치, 유지해 주는 사람은 코리언-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에게는 또 ‘미 정부를 지키는 사이버 보안관’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백악관, CIA, 법무부, 육·해·공군을 비롯한 10여개 미 정부 부처의 사이버 보안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STG(Software Technology Group)의 사이먼 리(이수동·52) 회장이 그 사람이다. STG는 지난 97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사이버 테러 방지를 지시했을 때 그 업무를 맡을 수 있는 27개 기업 중 하나로 뽑혔다.
18일 저녁(미국시각) 그는 ‘아시아계미국인 상공회의소’로부터 2001년 우수경영인상을 수상했다. 정부 부문 수상자인 엘라인 차오(Elaine Chao) 노동부장관과 나란히 단상에 선 그는 5분간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79년 미국에 건너온 이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벽과 난관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창의적 기업가와 리더가 되겠다는 강한 열정은 꺼질 줄 몰랐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정신, 미래의 번영을 위해 현재에 도전하는 정신을 계속 이어나갑시다.”
86년 STG를 집 차고에서 설립한 이후, 1000명이 넘는 직원과 총 매출액 1억달러를 육박하는 4개 계열사의 회장이 되기까지 지난 15년간은 그에게 야망과 도전의 세월이었다.
“맨 처음 직장은 해산물레스토랑 보조관리인이었죠. 안정된 생활을 할 만하니까 회사가 파산해 버리더군요.” 다시 잡은 프로그래머 조수직이 컴퓨터와 인연을 맺어준 계기였다. 그는 낮에는 어깨 너머로 컴퓨터를 익히고, 밤에는 학교로 달려가는 주경야독을 거듭했다.
“열성에 감동했는지 그 프로그래머는 퇴근 후 따로 남아 가르쳐주는 호의를 베풀었어요.”
여기서 익힌 기술을 갖고 그는 이후 3개 회사를 옮겨다니며 프로그래머와 네트워크관리자로 일했다. 85년 통신회사인 MCI에 입사한 직후부터 그는 낮에는 샐러리맨, 주말과 밤에는 1인회사 사장이었다. 컴퓨터 주문판매 등을 시도했으나 활로가 제대로 트이지 않자 그는 92년 당시 수석부장으로 일했던 MCI를 퇴직하기로 결심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아내가 ‘왜 안정된 직장을 버리느냐’고 무척 반대했지요. 하지만 컴퓨터 시장의 잠재성에 대한 제 집념에 결국 아내도 안심하더군요.”
이후 93년부터 5년간 STG는 2359%라는 경이적인 수직성장을 기록한다. 97년 국무부에서 9900만달러, 2000년 1억5000만달러를 수주했고, 조달청으로부터 2억2300만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따내는 등 26개 미 정부부처를 고객으로 삼았다. 국무부 프로젝트에는 IBM이 STG의 하도급업체로 들어와 있다. 그의 사업방식은 저돌적이다. STG보다 덩치가 컸던 TMS(Technical Management Services)와 전자보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Cyber Angel 등의 회사를 인수 합병함으로써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상복도 이어졌다. 미 중소기업청은 지난 98년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정보통신분야 모범 기업인으로 선정, 그의 성공사례를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 미 전역에 돌릴 예정이다. 경제잡지인 잉크(Inc.)는 미국 급성장 기업 중 105위로 STG를 꼽았으며, 워싱턴포스트 발행 매거진인 ‘워싱턴 테크놀러지’는 STG를 97·98·99년 3년 연속 고속성장 50대기업(워싱턴·버지니아 지역)으로 선정했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92년 3만달러를 들여 만든 첫 정부입찰 제안서를 제출해놓고 2개월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알아보니 여직원이 접수마감 시간 7분이 늦어 접수를 못 해놓고서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허탈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지요.” 돈을 꾸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고생도 결코 잊을 수 없다.
“글쎄요, 성공비결이야 달리 지름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을 소중하게 받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인재가 모이면 회사가 흥하고, 인재가 나가기 시작하면 회사가 망하는 법이죠.” 그는 자선이나 후원금을 직원들 이름으로 내게 한다. 1년 평균 20만~30만달러는 그렇게 쓰인다. 직원들이 퇴직할 때면 꼭 자신의 주머니에서 특별보너스를 따로 지급한다. 1년 일했을 경우 1달치 월급 정도다. 유호경이사는 “3년 전 제가 입사했을 때는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미국 사람들과 인화를 이루는 이 회장의 능력은 대단합니다”고 말했다. 각종 학교에 컴퓨터를 지원하고 교육을 시키는 등 사회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모교인 고려대에는 2년 전 30만달러를 선뜻 기부했다.
“이제는 글로벌 마켓시대이고, 한국은 정보통신분야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STG Security’를 설립한 그는 “중동건설붐 때처럼 한국의 IT산업이 미국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며 “STG가 그 다리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30여개 한국 회사들과 각종 컨설팅을 했다”면서 “현재 한국의 모그룹과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민와서 늘 꾸고있는 꿈은 정보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적인 회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자보안 통합 솔루션을 개발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STG가 내걸고 있는 기치는 ‘21세기를 위한 솔루션(Solutions for the 21st Century)’이다. 그는 요즘도 밤 9시쯤, 회사 불을 마지막으로 끄고 퇴근하는 사람이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slee@stginc.com이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
▶약력 ◇49년 경북 구미 출생 ◇72년 고려대 산업공학과 졸업 ◇75년 삼성 입사 ◇79년 도미 ◇85년 MCI 입사 ◇86년 STG 창업 ◇언스트앤영(회계법인) 올해의 기업인 선정(98, 99년) ◇잉크지 선정 미국 고성장 500대 기업 중 105위





